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문단 편집) === (구) 수원 야구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89수원야구장개장식.jpg|width=100%]]}}}|| || 1989년 4월 2일 수원 야구장 개장식 및 개장기념 시범경기[* 이날 경기는 당시 인천-경기-강원지역 연고팀이던 [[태평양 돌핀스]]의 시범경기 중 마지막 홈경기로 열렸고 9회말 극적인 3득점으로 8:7의 역전승을 거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news.suwon.go.kr/161708872051d4c68c8d509_gd800.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5년 수원야구장 전광판.jpg|width=100%]]}}} || ||<-2>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3011708840006100_P2.jpg|width=100%]] || ||<-2> 리모델링 전 수원 야구장[* 두 장의 그라운드 전경 사진은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인 2008년 이후의 사진이며 전광판이 찍힌 사진은 2005년 5월 5일 현대와 KIA와의 경기 때 찍힌 사진이다. 해당 경기는 저 상황에서 이용규가 솔로홈런을 때리면서 KIA가 한 점을 추격했지만 최종적으로 10-8로 현대가 승리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0994950|경기]][[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5&aid=0000203901|기록]][* 이 기사에서는 이용규가 9회에 2점홈런을 쳤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기사에 있는 해당 경기의 스코어보드와 앞 기사의 내용을 볼 때 2점홈런을 쳤다는 내용은 단순한 오타로 보인다.] || 1989년 가을 수원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를 위해 건설된 야구장이다. 당시 좌석 규모는 14,000명정도. 개장 후 첫 KBO 리그 경기는 [[1989년]] [[4월 2일]] [[OB 베어스]] vs [[태평양 돌핀스]]의 시범경기였다. 개장 당시부터 1999년까지는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지역 연고구단인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제2 홈구장]]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2000년 초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인천을 떠난 현대의 서울 연고지 입성 계획]]이 난항을 겪으면서 [[수원시]]가 임시 연고지가 됐고 수원야구장은 자연스럽게 제1 홈구장이 되었다. 태평양 시절 초기엔 평균 6~9경기, 많아야 12경기 정도가 열리는 평범한 2구장이었다. 개장 첫 해인 [[KBO 플레이오프/1989년|1989년 플레이오프]] 3~4차전이 수원에서 열릴 뻔했으며[* 당시 태평양은 막강한 투수력에 비해 부실한 타력의 팀 컬러를 갖췄다. 그래서 장타력이 출중한 해태와 삼성의 경기를 수원에서 자주 잡았고 1989년 플레이오프도 그런 의미로 수원에서 열릴 뻔 했으나 프로야구 창설 이후 인천 연고팀으로는 최초로 가을야구에 올라갔던 만큼 실제 경기는 [[숭의야구장|인천]]에서 개최되었다.] 1999년에 63경기 중 21경기를 수원에서 치러 임시 연고 이전 전까지 가장 많은 경기가 배당된 바 있다. 또한 1999년엔 올스타전도 열렸다. 개장 이후부터 수원의 야구 열기는 꽤 높았는데 수원 경기가 있을 때에는 대체로 만원에 가까운 관중 수를 기록했다. 인천·경기·강원 연고팀 역사상 처음으로 태평양이 [[199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즈음]] 수원구장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특히 [[삼성전자]] 본사 및 공장이 있는 수원시의 특성 때문인지 태평양 시절 삼성 라이온즈는 거의 매년 원정경기 9게임 중 6경기를 인천이 아닌 수원에서 치렀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돌핀스 야구단을 인수하고 [[재계 라이벌 시리즈]]가 성립된 뒤로는 수원 삼성전이 바로 사라졌다가 2000년에 현대가 수원을 임시 홈구장으로 쓰면서 삼성이 수원을 다시 찾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뜨거웠던 수원의 야구 열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소 사그러진다. 이유는 1996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야구장 바로 옆 [[수원종합운동장]]을 홈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종합운동장을 홈으로 쓰다가 2002년에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창단했기 때문이었다. 블루윙즈 축구단은 수원을 메인 연고로 하는 첫 번째 프로 스포츠팀인데다 수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삼성의 축구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수원시민들이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블루윙즈 축구단은 성적과 마케팅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뜨거워진 K리그의 인기를 등에 업으면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반면 현대는 엄밀히 따졌을 때 수원을 연고로 하는 팀이 아니었고 언제든 수원을 떠날 '뜨내기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던데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프로야구의 인기가 그야말로 폭망하면서 수원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수가 급감했다. 인천 시절에는 그럭저럭 인기가 있던 현대가 졸지에 비인기 구단으로 전락한 것은 덤. 수원야구장에도 SK의 흔적이 있었는데 바로 전광판. 수원야구장을 지을 때 전광판 설치비용을 수원 연고 기업이던 선경그룹에서 협찬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가로 전광판 아래에 SKC와 SK텔레콤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더군다나 쌍방울 해체 직전 SK그룹이 프로구야구단을 창단할 때 KBO와 협약을 맺고 수원을 연고로 창단하려 하였지만 현대와 겹치는 경기도 광역권을 두고 마찰이 생겨 난항에 빠졌다가 거의 마무리까지 되어 가는 도중에 현대가 수원으로 이전하며 수원시에 프로구단 창단이 물 건너 가고 비어있던 인천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KBO는 광역 연고제였고 SK 광역 연고는 경기도로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경기도는 이미 현대 광역 연고지였기 때문에 협상이 필요하였고 타 구단들은 각 연고도시 주변 도 지역들을 광역 연고로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가 반발하여 SK 도시 연고가 수원이면 주변 도 지역인 경기도가 광역연고가 되어야 했지만 배제되었고 배제된 것에 불만을 표출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연고 문제 이후 SK와 현대의 감정이 극도로 안 좋았지만 SK텔레콤 광고 문구만큼은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버젓이 붙어 있었다. 프로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된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해체 후 [[kt wiz]] 창단 전까지 명목상 SK의 제2구장으로 여겨졌지만 SK는 다른 구단과는 달리 도시연고인 '''인천 SK''' 구호를 강조하는 터라 현실적으로 수원에서 홈 경기를 치를 수는 없었다.[* 수원에서 홈 경기를 하겠다며 ''''인천''' SK'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의암야구장|춘천]]에서 홈 경기를 치르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 이 당시 수원시에서는 야구장 활용 문제로 애를 많이 먹었던 모양이다. [[http://www.ytn.co.kr/_ln/0103_200811080400171159|관련 보도]] [[동대문야구장]]의 해체와 [[넥센 히어로즈]]의 [[목동 야구장]] 사용으로 인해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국내 모든 고교 야구팀이 참가 가능한 큰 대회라 [[한신 타이거스]]처럼 한 달 가까이 원정만 죽어라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목동에서 경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가 2008년부터 이 곳에서 개최되었다. 기타 아마추어 야구 경기의 개최 빈도가 급상승했다.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시행에 따라 경기도 지역 고교 팀들의 주말리그 구장으로 결정되었으며 사회인 대회로 전환한 봉황대기[* 2013년 대회부터 다시 고교야구 대회로 돌아갔다.]를 대신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개최되었다. 한편, [[현대 유니콘스]]가 본격적으로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2000년에 유니콘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해 9월 갑작스레 잔디가 누렇게 변색되어버리는 문제가 생겼다. 누렇게 보여서 시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시든 것이 아니라 변색된 것일 뿐이다. 다른 야구장의 잔디가 외래종인 사철 잔디인데 비해 수원 야구장은 재래종인 금잔디이기 때문에 봄, 가을이 되면 노란색으로 변색된다. 하지만 시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잔디 상태는 초록색일 때나 별 차이가 없다. 사실 금잔디는 유럽과 달리 기온차가 심하고 여름에 고온 다습한 한국의 기후에 잘 버티는 잔디 품종이기 때문에, 현대 유니콘스가 리그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잠실이나 문학 야구장의 잔디가 여기저기 죽고 엉망 진창이 될 때도 수원 야구장의 잔디는 멀쩡했다. 어쨌든 변색 때문에 포스트시즌 때는 잔디에 녹색 페인트를 뿌렸던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원야구장 잔디는 현대시절부터 지금도 상당히 좋기로 소문났고 누렇게 변한것이 오히려 '''구단 컬러(초록-노랑-검정)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다. 이 잔디는 프로 경기장의 잔디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에 따라 이후 리모델링 과정에서 철거되고, 사철 잔디인 켄터키 블루그래스 종으로 새로 깔렸다. 이 시기 야구장의 화장실과 휴게실은 답이 없었다. 남자화장실의 소변기는 8-90년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철판 변기'''이고, 여자화장실에는 좌변기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구장 내에서 판매되는 먹을거리의 종류가 매우 부족했다. 기껏해야 배 채울 수 있는 게 [[컵라면]]뿐이었다. 개장 당시만 해도 좌우로 100m, 중앙펜스 125m의 꽤나 [[크고 아름다운]] 구장이었다.[* 일반적인 표준야구장의 규격은 좌우 99m, 중앙 122~3m 정도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새로 지어지는 야구장은 저 규격을 표준으로 하고 있다.] 서울의 잠실야구장과 똑같은 규격으로 지어진 구장이였던 것. 너무 구장이 크기에 [[현대 유니콘스]]의 임시 홈 구장[* 원래 현대 유니콘스는 서울을 연고지로 쓸려고 했으나 기연고지인 관계로 막대한 돈을 내야했다. 문제는 이 돈이 없었기에 수원을 임시 홈 구장으로 쓰게 된것이다. 당연히 임시로 온거기에 지역 팬이 모이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나 여기 홈이 아닌데 어쩔수 없이 쓰는거야 하는데 누가 좋아할지? 성적이 좋았음에도 인기가 거의 꼴지급이였기에 이게 수원은 축구도시라서 야구는 인기없다는 말이 많이 돌았다. 결국 현대 유니콘스는 사라지고 그 뒤를 이은 넥센이 서울의 목동으로 이전했다.]이 된 이후 당시 감독이던 [[김재박]]의 요청으로 [[X-존|5m 앞에 보조펜스를 설치해서]] 좌우 95m, 중앙 120m의 규격이 되었다. 2005년 신청사가 완공되기 전까지 [[장안구]]청 청사로도 사용되었으며, 1루 덕아웃 문을 열고 나오면 세무과가 보였다. 이 당시에 장안구 보건소는 바로 옆 [[수원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사용 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